한적한 시골 마을, 누구도 가지 않는 언덕 위엔 오래된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달빛 도서관”이라 불렀다. 도서관은 낮에는 문을 닫고, 밤에만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책을 빌리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주인공은 19살 소녀 윤서였다. 윤서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마저 병상에 누운 채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다. 매일 병원과 집을 오가는 고단한 삶 속에서 윤서는 더 이상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윤서는 우연히 달빛 도서관에 발을 들이게 된다. 문을 열자 은빛으로 빛나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광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 그리고 책장 사이로 서성이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비현실적으로 창백한 얼굴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와. 처음 보는 손님이네.”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윤서는 긴장한 채 물었다.
“여기서 책을 빌릴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남자는 웃으며 손짓했다.
“물론. 하지만 여긴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야. 이곳의 책들은 네가 잃어버린 시간, 혹은 간절히 바라는 순간을 담고 있어.”
남자의 말대로 윤서는 책을 펼쳐 보았다. 첫 페이지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나눴던 행복한 추억들이 생생히 재현되고 있었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잊고 있던 웃음소리와 따뜻한 기억들이 윤서를 감싸 안았다.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나요?” 윤서는 울먹이며 물었다.
“할머니를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곳의 책은 너에게 용기를 줄 뿐,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 하지만 네가 진심으로 원하고 행동한다면… 어떤 기적도 가능할지 몰라.”
윤서는 달빛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책에 적힌 할머니와의 추억은 그녀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다음 날 윤서는 병원을 찾아가 치료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간병인을 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몇 달이 흐르고, 어느 날 아침.
병실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목소리에 윤서는 놀라 눈을 떴다.
“윤서야…”
할머니가 눈을 뜬 채 윤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 도서관은 그 후로도 오랜 세월 언덕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릴 때마다, 그곳의 은빛 책들이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