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태양이 머물기를 망설이는 짙은 숲이 있었다. 숲은 오래되고 신비로운 소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무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속삭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하지만 은서에게는 그곳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은서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 숲으로 도망쳐왔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은서의 그림자는 남들과는 달랐다. 너무 짙고, 너무 커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저주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은서에게는 그것이 단지 삶을 어렵게 만드는 존재였다.
어느 날, 은서는 숲 속 깊이 들어가다가 길을 잃었다. 해가 저물자 숲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공포가 은서를 휘감았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나무 아래 앉아 떨고 있었다. 그때, 그의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것은 은서의 의지와 상관없이 숲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뭐지…?” 은서는 어둠 속에서 그것을 쫓아갔다.
그림자는 숲의 중심으로 은서를 이끌었다. 거기에는 오래된 돌로 만든 원형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은서의 그림자가 마치 주인을 기다리듯 멈춰 서 있었다.
은서가 가까이 다가가자, 돌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자는 하나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숲 전체가 이상한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림자가 은서의 발 밑으로 돌아오자, 제단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그림자의 주인인가?”
은서는 겁에 질린 채 대답했다.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 그림자를 원하지 않아요.”
목소리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림자는 그대의 짐이 아니라, 그대의 힘이다. 이 숲은 오래전 그림자의 주인들로부터 만들어졌다. 그대는 그 유산을 계승할 자격이 있다.”
은서는 혼란스러웠다. “힘이라니요? 전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평범한 삶은 그대를 원하지 않는다.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그 힘을 깨우라. 그러면 이 숲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제단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은서는 눈을 감았고, 자신이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숲의 영혼이었다.
눈을 떴을 때, 은서는 자신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림자를 처음으로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짐이 아니었다. 그의 일부, 그리고 그의 힘이었다.
숲은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서에게 속삭였다. “너는 이제 우리의 일부다.”
은서는 천천히 숲을 걸어나갔다. 이제 그의 그림자는 단지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숲은 단순히 그의 도피처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시작이었다.